정의 : 통화를 교환(swap)한다.
서로 다른 통화를 약정된 환율에 따라서 일정한 시점에 상호 교환하는 외환거래
목적 : 상대국의 통화를 활용해서 안정적인 환율을 유지
원래는 파생상품의 한 종류

두 나라가 자국 통화를 상대국 통화와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IMF(국제통화기금)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경우, 통제와 간섭, 경제주권의 훼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통화스왑은 안정적으로 외화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

최초의 국가간 통화스왑은 

1959년 미국과 독일연방은행
20152월 일본과의 통화스왑은 중단
우리나라는 2001-2012년까지 일본과20- 700억달러, 중국과 560억 달러, 치앙마이 이니셔팁므 기금(CMIM)384억 달러의 통화스왑을 맺고 있다.
20081030일에는 미국과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체결.-20102월 종료

국가간 통화스왑의 단점

 

통화스왑을 상환 또는 변제할 경우, 최초 계약시에 정한 환율을 적용
한국과 일본이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을 때, 한국에 외환위기가 발생해 외환보유고가 바닥났다면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오면서 원화를 일본에 담보로 맡긴다. 이후 변제할 땐 통화스와프 협정 당시의 환율을 적용해 시세변동 위험을 피할 수 있다.
1971년 미국과 독일이 국가간 장기스왑협정 체결후, 닉슨이 미국의 금태환 중지선언으로 달러가치는 폭락하고, 마르크화 가치는 급등à

  1970년 환율 : 1달러당 2마르크

1975        : 1달러당 1마르크
독일은행- 10억달러 스왑계약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20억마르크가 필요.1975상환시에는 10억마르크로 상환가능
미국은행- 10억마르크를 상환하기 위해서는 5억달러가 필요, 1975상환시에는 10억달러가 필요해서 결국 손실발생.
Posted by Jason syngeun lee
,

Oeconomicus 에서 오이코는 집을 의미하고 노미(norm)는 법이나 지배를 의미한다. 이는 오로지 가정관리에 대한 실제적인 지혜만을 의미한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크레마티스틱스(Chermatistics)를 명칭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가 오이코노미쿠스와는 반대의 의미로 사용했다. 즉 오이코노미쿠스가 도시국가인 공동체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것이라는 의미로서 파악하고 있었고, 크레마티스틱스는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정우 교수는 크레마티스틱스를 '이재'로  사용했다. 전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한 선(善)을 의미하면, 후자는 공동의 이익에 배치되는 악(惡)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이유로 경제행위를 정치철학이나 사회철학의 하위범주로 설정했다.  

왼쪽이 플라톤 오른쪽이 아리스트 텔레스

 

크레마티스틱스는 주로 영업행위의 금전적 측면을 지칭할 뿐이다.

그러나 이정우 교수의 지적처럼,  오늘날에는 경제학이 오히려 이재에 관한 학문이 되어 버렸다. 경제학의 원래 단어인 오이코노믹스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굳혀진다.  "공동의 이익을 위한 선"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 사상의 기초가 바로 이 두개간의 차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화폐의 축적(돈을 긁어모으는 것) 그 자체가  비자연스러운 활동이며 이는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비인간화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화구매를 위한 화폐, 무역거래 내지는 교환 그리고 고리대금은 화폐로부터 화폐를 창출하지만 유용한 재화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들의 철학윤리의 준거점으로부터 이들 활동을 비난한다.

Posted by Jason syngeun lee
,

 

주류경제학

마르크스 & 스라파

경제문제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

경제적 잉여의 재생산

경제 결정

일차적으로 개인(소비자,생산자)에 의해 결정

개인이 속한 제도와 구조 내지는 계급집단의 수준에서 결정

자본에 대한 시각

이질적인 자본재들을 생산시점 이전에 미리 주어진 합산가능한 물리적인 양(사전적 부존량)

자본을 역사적으로 변천하는 관계

마르크스: 자본은 물리적인 존재이전에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간의 적대적인 사회관계로 파악

문제점

자본량= 자본총가격 ×이윤율(평균적 자본소득)

 

-그러나 이윤율이 변하면 자본량도 변화한다. 그래서 주어진 자본량과 이윤율간의 고정된 함수관계를 도출할 수 없다.

스라파: 이질적인 상품(자본재)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자본재를 다른 상품의 생산에 투입되는 상품으로 간주, 즉 이질적인 상품간의 투입-산출관계에 따라 상품 및 자본재가격이 정해진다.

 

자본의 양을 가격으로 계산

이윤을 자본의 한계생산물로 설명한다. 하지만 자본을 가격단위로 합산할 때 주어진 자본량의 한계생산물로 이윤의 크기를 설명한다.

그 자본량은 또 그 이윤의 함수- 순환논법에 빠짐.

 

Posted by Jason syngeun lee
,

Schumpeter는 그의 글에서 은근히 아담스미스를 저평가 한다.

 p107, 스미스의 [국부론]은 방금 정의한 의미의 정치경제학 체계이므로 우리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이 책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히려 스미스의 정책적 원리와 처방-자유무역과 그밖의 정책에 대한 그의 신중한 지지-이 그의 위대한 분석적 성취로 포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갖는 미덕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그가 무엇을 주장했는지보다 그가 어떻게 주장을 펼쳤으며, 그러기 위해서 어떤 분석도구를 사용했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그 자신과 그의 독자들에게는 그의 정책적 원리와 처방 자체(가치판단을 드러내는 이데올로기를 포함해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중요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그의 연구가 대중에게 널리 읽혔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인간 지성의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원리와 처방 모두 그가 살던 시대와 나라를 벗어나서는 타당성을 상실하는, 즉 그 시대와 나라의 이데올로기를 공식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어쨌든 슘페터 본인이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10대경제학자]라는 책에서도 아담스미스의 이름은 빠져 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그의 부인과 유족들이 거의 짜집기 수준으로 책을 펴낸 것과  마르크스와 케인즈에 상당한 호의를 베푼 점도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사람들의 사고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계급들의 행동과 이익을 칭송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계급에 관해 진실과 상당한 간극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그림을 그리거나 그런 의미를 함축하는 경향이 있다. 중세의 기사는 자신을 약자의 보호자이자 기독교 신앙의 수호자로서 상상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그들 세계의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 세계를 존재하도록 하는 그들의 실제행위와 여기에 덧붇일 수 있는 다른 요소들은 다른 시대와 다른 계급의 관찰자가 볼 때 분명 매우 다르게 보인다. 이러한 사고체계를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각주:1]  당대 경제학의 상당부분은 산업과 상업 자본가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가 말하고자 한 내용이었다. 이는 역사과정과 사회과학에 대한 우리의 시각에 훌륭히 기여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데, 그 가치는 다음의 세 가지 결점에 의해 손상될지언정,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는 않는다.

 

첫째, 마르크스는 자신이 공감하지 않는 사고체계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대해 매우 민감했지만, 자신의 사고체계에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적 요소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나 그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해석하는 기준은 완전히 일반적인 것이어야 한다. 분명히 우리는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은 이데올로기이고, 우리만이 절대적 진리의 반석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노동운동가의 이데올로기가 다른 누구의 이데올로기보다 더 나은 것도 더 나쁜 것도 아니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분석은 이데올로기적 사고체계를 계급이해의 윤활유로 격하시키며, 계급이익은 오로지 경제적 의미로만 정의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다소 거칠게 말해 그가 자본가계급으로 부르는 계급의 이익-이 계급의 이익은 금전적 이득을 중심으로 한다-을 미화한다. 그러므로 실제 사업을 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 이를테면 국민적 특성과 성격을 미화하는 이데올로기는 비록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항시 지배계급의 경제적 이이긍로 환원될 수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이데올로기를 해석하는 원칙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부가적이지만 훨씬 더 의심이 가는 이론을 구성한다. 여기서 원칙 자체는 오직 두 가지 의미만 지닌다. 우선 이데올로기는 상부구조로서, 객관적 사회구조의 현실(상부구조의 아래에 존재하는)을 바탕으로 하거나 그것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이 현실을 특징적으로 왜곡된 방식으로 반영한다. 이 현실이 완벽히 순수하게 경제적인 의미로 묘사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 우리의 사고가 전적으로 우리의 계급적 지위에 기반을 둔 경제적 요소로 형성된다고 볼 수 없으며, 설령 그렇다고 해도 잘 정의된 계급이나 집단이익이 온전히 경제적 요소로만 형성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셋째, 마르크스와 특히 그의 추종자들 대부분은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드러내는 언급이 사실상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난받는다고 너무도 쉽게 가정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합리적 결정처럼, 이데올로기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이데올로기가 포함된, 사실에 대한 주장이 필연적으로 오류가 아니라는 점도 덧붙여져야 한다. 어느 누구든지 자신이 싫어하는 주장들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름으로써 그 몸통을 한번에 강타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픈 강렬한 유혹을 받는다. 이 방법은 의심의 여지없이 효과적이다. 상대방의 개인적인 동기를 자극할 정도로 효과적인 공격이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누군가 우리에게 자신이 하는 말의 이유를 아무리 정확히 설명한다고 해도, 그 설명 자체로는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 말해 주지 않는다. [경제분석의 역사,1권,p103-104 Schumpeter.

 

과학적 경제학의 역사는 이데올로기의 역사다.(슘페터의 주장을 요약하면), p.100-116p.

슘페터는 실제로 위와 같은 주장을 하지만, 이데올로기적 학문의 편향성을 지양해야 하는 논조로 이야기 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적인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라고 반문하고 싶다. 물론 슘페터가 언급한 대로 "사람들이 그것을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관련이 있다고 잘못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라는 형식으로 주장자가 아닌 그것을 읽는 사람에 의해 잘못받아들일 가능성에 염려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잘못 읽어내지 못하도록 여러 장치를 고안해서 논리적 설득력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것이 경제학자의 임무이다. "과학적"이라는 부분에 대해 그야말로 물리와 수학을 동반한 순수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은 슘페터 본인이 책의 앞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심리학, 사회학 등등 기타 학문과의 연계성과 포섭력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예전에 본인이 논문에서 한계생산력설에 의한 분배론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잘 짜여진 이론이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 모 논평가가 '슘페터'의 경제분석의 역사를 읽어보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어봐도 나는 내가 한 주장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완성된 이론이기 때문이다. "자본은 자본이 기여한 만큼, 노동은 노동이 기여한 만큼'-즉 한계생산성에 따른 배분-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본과 노동의 대체탄력성이 일정하지 않다. 이 말은 그 대체탄력성이 일정한 경우 즉 선형인 경우에 한계생산성에 따른 분배가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즉 노동과 자본의 대체탄력성은 비선형인 경우가 현실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자본과 노동간의 대체탄력성의 기울기가 일정하다면 이것은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은 한계생산성에 따른 분배이론은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자본이 기여한 만큼, 노동이 기여한 만큼 찾아가는데도 왜 정의로운 사회가 아닌가? 또는 왜 불평등한 분배문제가 이리 심각한가를 고민해보면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그러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비딱선을 타서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슘페터 본인은 마르크스도 아니고  아담 스미스도 아닌 중립적 관찰자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의 글에서 난 재들과 달리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않고 글을 쓰고 있다고 강조하고 싶었던 마음일런지도 모르겠다.

  1. 이 말은 프랑스에 그 기원이 있다. 처음에 이말은 특히 콩디야크(Condillac) 의 이론을 참고하여 단지 사고에 대한 분석을 의미했다. 때로 이 말은 도덕철학, 즉 거칠게 말하면 사회과학과 동등한 의미로 자주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미는 데스튀트 드 트라시(Destutt de Tracy)가 사용했다. 나폴레옹 1세도 이말을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경멸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비현실적인 몽상가라고 생각한 라파예트(Lafayette)처럼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을 이데올로그(ideologues)라고 불렀다. [본문으로]
Posted by Jason syngeun lee
,

김광석

잡학 2017. 10. 4. 15:52

한 때 민중음악을 통해 음악을 시작한 김광석은 아시다시피 대구 방천시장에서 태어나 한 시대를 풍미하는 가수가 되었다. 노찾사와 동물원을 거치면서 그룹내의 다른 친구들은 취미활동으로 또는 시대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의식으로 전문적인 상업가수와는 다소 다른 행보를 보이게 된다. 김광석은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하다 보니 전문가수로서의 전환을 꾀하게 된다. 

처음 자살이라고 발표했을 때에는 도대체 이유가 무얼까 궁금했지만, 개인사로 인한 자살이라고 발표난 후 ,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오늘날에야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나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대구 김광석 거리에서의 사진 몇장

또 하나의 걱정은 그의 부인에 대한 확실하지는 않지만 합리적인 의심으로 인해 그의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이 왠지 조심스러워지고, 그의 노래를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그로 인해 덕을 보는 것은 아닌지, 이런 점들이 오히려 김광석의 노래 찾기를 꺼려하지 않을 까 걱정도 된다.

 

이등병의 편지(1993년)- 90년 5월 겨례의 노래에 처음 수록된 곡이다. 김광석이 부르고 다닐 당시는 아마 난 이미 이 당시 제대하고 난 이후이다.  우리 때는 '입영전야'가 다 였다. 이 노래가 미리 나왔다면 목 놓아 부르고 또 불렀으리라 예상한다. 군을 제대하고 겨레의 논래 앨범을 LP로 샀었는데, 이 당시 LP판을 나중에 조카들에게 다 주어버렸다. 조카들이 여전히 소장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전인권-이등병의 편지

 

김광석-윤도현(이등병의 편지)

 

김광석-광야에서

김광석-사랑했지만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만의 추모를 한다.

'잡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학적 사고의 기초(출간)  (0) 2019.05.19
ErrorCheck(맬웨어) 제거하기  (0) 2017.10.12
독개미(붉은)  (0) 2017.10.02
카시오(Casio)FX-570es emulator 에뮬레이터)window version.  (0) 2017.09.29
나 가거든(If I leave)  (0) 2017.09.28
Posted by Jason syngeun lee
,

독개미(붉은)

잡학 2017. 10. 2. 01:39

최근 이 살인 독개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d imported fire ant( 붉은 수입 불 개미, RIFA, SolenopsisInvicta)가 호주와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발견이 되었답니다. 쏘일 경우 심한 통증과 가려움증을 동반해 현기증·호흡곤란등 쇼크 현상 까지 발생할 수 있는 ‘붉은 독개미’(Red imported fire ant)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 개미는 남미가 원래의 서식지이다. 스위스의 곤충학자 펠릭스 산토치에 의해 1961년에 묘사되었다. 이 붉은색의 개미는 남미에 자생하지만 호주, 뉴질랜드, 몇몇몇 아시아, 카리브 해 그리고 미국에서 우연히 소개되었다. 붉은색 불개미의 일꾼개미들은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나타난다. 열대우림, 초원지대, 사막, 도로, 건물, 전기장비에서 발견 될 수 있고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흙으로 지어진 거대한 입구를 만들기도 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사람과 식물에게 위험을 줄 수 있는 ‘붉은 독개미’가 지난 28일 부산항 감만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발견돼 방제조치중이라고 29일 밝혔다.

붉은 독개미는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이 지정한 세계 100대 악성 침입외래종에 속하는데, 국내에서 발견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붉은 독개미는 몸 속에 강한 독성물질을 지니고 있어 날카로운 침에 쏘일 경우 심한 통증과 가려움증을 동반하며 심할 경우 현기증과 호흡곤란 등의 과민성 쇼크도 올수 있다. 
북미대륙에서는 한 해 평균 8만명이 쏘여, 100여명이 사망했다는 보고도 있다. 몸통 끝부분에 독침이 있다고 한다.

물위에 떠 있는 상태에서도 공격한다.

대부분에 경우에, 불개미한테 물렸을 경우 심각한 몸의 이상상태가 나타나 당황해 하지만, 집에서 초기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우선 병원응급실로 가는 것이 바람직함) 

1. 우선 불개미한테 물린 부위를 가능한한 빨리 깨끗하게 씻어내어, 불개미한테 물린 부위의 독을 제거하도록 합니다. 비눗물로 빡빡 문지르세요. 그리고 알코올 솜 등으로 소독을 합니다.

2. 물린부위를 청결히 한 후에, 아이스 팩 또는 아이스를 이용하여 물린 부위를 30~60분 동안 문질러 줍니다. 얼음 찜질은 붓기와 통증을 가라 앉혀 줍니다.

3. 물린 부위를 지상보다 높게 하세요. 예를 들어 다리가 물린 경우, 베개 등을 이용하여 다리가 몸보다 높게 할 수 있도록 베개 위에 올립니다.

4. 불개미에 물리고 난 후, 몇분이 지나면 물린 부위 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가렵기 시작하고, 30분 정도 지나면 온 몸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매우 가렵게 됩니다. 대부분 너무 가려워서 참지를 못하는데 심하게 긁어되면  이는 피부에 흉터를 생기게 하고, 이차 감염을 유발합니다. 이때 
Calamine lotion을 바르면 가려움이 좀 덜해집니다. 증상이 심각하고 오래 지속되면 Antihistamine을 함유한 알러지 치료제(Benadryl 등)를 복용합니다. 만일을 대비해서 위의 치료제들은 집에 상비약으로 보관해 두시면 좋습니다.

5. 그래도 나아지지 않고 심각한 알러지 반응을 나타내면, 즉각적인 의료 치료를 해야합니다. 알러지 반응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슴고통, 호흡곤란, 분명하지않은 발언증세, 마비증세, 구토증세, 심각한 붓기증세, 열 증세 등이 나타날 경우 심각한 후유증 상태 또는 죽음에 이를 수 도 있습니다. 

* 불개미에 물렸다면,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가까운 응급실에 갈 수 있는 준비태세를 하시기 바랍니다 

'잡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rrorCheck(맬웨어) 제거하기  (0) 2017.10.12
김광석  (0) 2017.10.04
카시오(Casio)FX-570es emulator 에뮬레이터)window version.  (0) 2017.09.29
나 가거든(If I leave)  (0) 2017.09.28
chm파일 보는 방법  (1) 2017.08.12
Posted by Jason syngeun lee
,